[김정진 교수의 마음거울] 행복이란?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다
권대익 입력 2020.03.02. 19:02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사회 관계망의 증가에 따라 각종 소셜미디어를 수시로 접하게 된다. 보기에도 화려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 지구촌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올리는 황홀한 풍경, 아름다운 외모 가꾸기, 감탄을 자아내는 실내 인테리어 등 수시로 업데이트 되는 게시물들은 가장 멋지고 행복한 순간을 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이런 행복해 보이는 게시물들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끼기보다는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불행감을 더 크게 느낀다. 실제 통계를 보면 소셜미디어를 많이 접할수록 행복지수가 낮다는 보고가 있다.
감각적 자극은 일시적으로 쾌락을 느끼게 해 주는 도파민과 엔도르핀의 분비를 촉진하지만 도파민은 생명력이 짧다. 그래서 금단증상에 취약해지고 똑같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게 된다. 소셜미디어의 게시물들이 점점 더 자극적이 되어 가는 이유이다.
매일매일 행복하고 기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흥분 상태가 지나치게 높고 지속되는 경우를 정신의학적으로 조증(燥症)이라고 부른다. 조증이 지난 후에는 우울증이 뒤따른다. 이를 조울증(燥鬱症)이라고 한다. 예술가 중에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조울증을 앓았는데 말년에는 심한 우울증으로 피폐한 삶을 살았다. 조울증은 유지치료가 매우 중요한 질환이다.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보다 불행한 이유를 훨씬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우울한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별문제 없고 행복해 보인다. 수많은 인문ㆍ심리에 관한 책들은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한다. 행복해지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항상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불안은 강박증의 기본 요소다. 불안하면 때로는 특정한 생각에 집착하는 강박 사고를 갖게 되고 강박 사고는 강박 행동을 일으킨다. 사전적으로 강박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심리적으로 심하게 압박을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심리적으로 허기진 사람들은 헤밍웨이와 동시대를 살았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처럼 채워지지 않는 행복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남들에게 과시하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 올려진 ‘행복해 보이는’ 게시물들은 이런 ‘가짜’ 행복의 결과물인 경우도 많다.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기보다 남의 불행에 상대적으로 기뻐하는 것이 더 손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 것을 즐기는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분열시켜 그들의 불행과 분노를 먹이로 삼아 자신의 기쁨으로 만든다.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고 거짓말을 합리화하는 데 능하다.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어 휘둘리기 쉽다. 특히 요즘 같은 재난 시대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게 좋은 놀이터가 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삶에서 극치의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은 순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우리의 하루는 대부분 지루하고 평범하며 때로는 고통스럽다. 밤하늘의 별이 빛나는 것은 우주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암흑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행복해지려면 견뎌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행복은 흔히 쓰이는 단어이지만 쉽게 정의할 수 없으며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재난이 닥치면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근심 걱정이 없어 안심이 된다’는 행복의 기본 전제를 잠시 잊고 지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힘든 시기이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남들을 위해 희생하고 공감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이타주의적인 성향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소영웅’을 통해 잠시나마 안도와 행복감을 느낀다. 어두운 밤하늘에도 언제나 별은 빛난다.
김정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