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말했다… 닮고 싶지 않은 노년 3, 닮고 싶은 노년 3
기사입력 2021.07.14. 오전 3:04 최종수정 2021.07.14. 오전 10:50
[당신의 리스트] [20] MZ세대 작가 이주윤의 ‘이렇게 나이 들고 싶지 않다…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공자 가라사대,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하였다. 그의 가르침을 따라 주변인을 가만히 살펴보며 배울 만한 모습과 닮아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모습을 잘 기억해 둔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기록해 놓았다가 이따금 확인하며 자율 학습을 한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르신까지, 세상에 스승 아닌 사람 하나 없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중·장년의 모습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공자 가라사대,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하였다. 그의 가르침을 따라 주변인을 가만히 살펴보며 배울 만한 모습과 닮아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모습을 잘 기억해 둔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기록해 놓았다가 이따금 확인하며 자율 학습을 한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르신까지, 세상에 스승 아닌 사람 하나 없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중·장년의 모습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보며 오늘의 나를 살피지만, 그 거울은 언젠가 노년의 내 모습도 비추게 될 것이다.
[이렇게 나이 들고 싶지 않다]
배우자 험담하기
아저씨들이랑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꼭 이러한 속내를 꺼내 놓으신다. “내가 원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 장남이라 등 떠밀려 한 거야.” “의리로 사는 거지 좋아서 살겠어?” “나 각방 쓴 지 오래됐다.” 그러고는 당신 아내를 요모조모 헐뜯기 시작한다. 아는 사람 욕이라야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칠 텐데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험담을 듣는 일이 영 지루하기만 하다. 때 빼고 광내어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해 준 아내의 노고에 감사할 줄 모르는 모습이 배은망덕해 보임은 물론이다. 외로운 티 풀풀 풍기며 흑심 가득한 눈빛만 보내지 않으신다면야 연민을 발휘하여 들어 드릴 수는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흐르고 흘러 아내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때는 나도 모른다. 없는 데서는 나라님도 욕한다는데 뭐 어떠냐고 생각하신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남편 차 블랙박스를 우연히 봤다가 남편이 육두문자 섞어 가며 자기를 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이혼을 고려 중이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은 적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으며 혼잣말은 블랙박스가 듣는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마시길.
어리다고 무례하게 대하기
지금은 작가 행세를 하고 있지만 한때는 간호사로 일했었다. 대부분은 나를 “간호사님”이라 불러 주었으나, 유독 중년의 환자들은 “아가씨” “어이” 하는 식으로 기분 나쁘게 호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를 먹으면 깜빡깜빡한다더니 적절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아 멋대로 부르는 걸까? 좋게 생각해 보려 했지만 그런 분들은 대체로 ‘진상’에 가까웠기에 그저 교양이 부족한 탓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선배 간호사는 그러한 환자에게 더욱 친절했다. 미운 환자 떡 하나 물려 보내는 것이 상책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반면, 사회생활의 쓴맛을 몰랐던 나는 입가에 콩고물도 묻혀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가씨, 물 좀 떠다 줘 봐” 하는 환자의 요청을 거절했고, 비위가 상한 그분은 온갖 트집을 잡기 시작했으며, 결국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저딴 게 무슨 간호사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그때는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지만 지금이라면 김춘수 시인의 ‘꽃’을 빌려 이렇게 대꾸할 테다. 당신이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간호사’라는 호칭을 사용해 주었더라면 저도 당신에게로 가서 친절한 간호사가 되지 않았을까요?
주말에 등산하자 강요하기
함께 일한 지 십 년이 넘은 출판사 대표님이 갑자기 안경을 쓰셨다. 평소보다 행동도 점잖아 보이기에 “지식인 코스프레 중이세요?” 물었더니만 “노안이다, 인마!” 하며 쓴웃음을 지으셨다. 대표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훑어보았다. 두건을 졸라매고 태백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 완주 메달 사진, 석양으로 물든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진. 영락없는 아저씨가 되었구나 싶다. 그는 자기만 아저씨가 되기는 억울했는지 나까지 중년의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지인들과 주말마다 조깅을 하는데 날더러 거기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주말에 봐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정색했더니만 요즘 들어 눈물이 많아졌으니 매몰차게 굴지 말란다. 굳이 모여 우르르 뛰어다니는 목적이 무엇이냐 내가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갈 데가 없어서 그래.” 집에 있으면 걸리적거린다고 잔소리, 여행이라도 간다고 하면 가기는 어딜 가냐고 또 잔소리, 잔소리를 피해 온종일 달리다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심정을 아느냐며 울컥하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짠했다. 그래도 내가, 굳이 주말을, 아저씨 무리와 함께? 등산이든 조깅이든 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조깅하러 나오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아하!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배우자 험담하기
아저씨들이랑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꼭 이러한 속내를 꺼내 놓으신다. “내가 원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 장남이라 등 떠밀려 한 거야.” “의리로 사는 거지 좋아서 살겠어?” “나 각방 쓴 지 오래됐다.” 그러고는 당신 아내를 요모조모 헐뜯기 시작한다. 아는 사람 욕이라야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칠 텐데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험담을 듣는 일이 영 지루하기만 하다. 때 빼고 광내어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해 준 아내의 노고에 감사할 줄 모르는 모습이 배은망덕해 보임은 물론이다. 외로운 티 풀풀 풍기며 흑심 가득한 눈빛만 보내지 않으신다면야 연민을 발휘하여 들어 드릴 수는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흐르고 흘러 아내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때는 나도 모른다. 없는 데서는 나라님도 욕한다는데 뭐 어떠냐고 생각하신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남편 차 블랙박스를 우연히 봤다가 남편이 육두문자 섞어 가며 자기를 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이혼을 고려 중이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은 적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으며 혼잣말은 블랙박스가 듣는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마시길.
어리다고 무례하게 대하기
지금은 작가 행세를 하고 있지만 한때는 간호사로 일했었다. 대부분은 나를 “간호사님”이라 불러 주었으나, 유독 중년의 환자들은 “아가씨” “어이” 하는 식으로 기분 나쁘게 호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를 먹으면 깜빡깜빡한다더니 적절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아 멋대로 부르는 걸까? 좋게 생각해 보려 했지만 그런 분들은 대체로 ‘진상’에 가까웠기에 그저 교양이 부족한 탓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선배 간호사는 그러한 환자에게 더욱 친절했다. 미운 환자 떡 하나 물려 보내는 것이 상책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반면, 사회생활의 쓴맛을 몰랐던 나는 입가에 콩고물도 묻혀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가씨, 물 좀 떠다 줘 봐” 하는 환자의 요청을 거절했고, 비위가 상한 그분은 온갖 트집을 잡기 시작했으며, 결국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저딴 게 무슨 간호사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그때는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지만 지금이라면 김춘수 시인의 ‘꽃’을 빌려 이렇게 대꾸할 테다. 당신이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간호사’라는 호칭을 사용해 주었더라면 저도 당신에게로 가서 친절한 간호사가 되지 않았을까요?
주말에 등산하자 강요하기
함께 일한 지 십 년이 넘은 출판사 대표님이 갑자기 안경을 쓰셨다. 평소보다 행동도 점잖아 보이기에 “지식인 코스프레 중이세요?” 물었더니만 “노안이다, 인마!” 하며 쓴웃음을 지으셨다. 대표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훑어보았다. 두건을 졸라매고 태백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 완주 메달 사진, 석양으로 물든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진. 영락없는 아저씨가 되었구나 싶다. 그는 자기만 아저씨가 되기는 억울했는지 나까지 중년의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지인들과 주말마다 조깅을 하는데 날더러 거기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주말에 봐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정색했더니만 요즘 들어 눈물이 많아졌으니 매몰차게 굴지 말란다. 굳이 모여 우르르 뛰어다니는 목적이 무엇이냐 내가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갈 데가 없어서 그래.” 집에 있으면 걸리적거린다고 잔소리, 여행이라도 간다고 하면 가기는 어딜 가냐고 또 잔소리, 잔소리를 피해 온종일 달리다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심정을 아느냐며 울컥하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짠했다. 그래도 내가, 굳이 주말을, 아저씨 무리와 함께? 등산이든 조깅이든 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조깅하러 나오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아하!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누구를 모델로 삼아 어떻게 늙고 싶은지는 결국 '선택'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사진들은 이미지 서비스 사이트 셔터스톡에서 찾은 노년의 여러 얼굴들로 신문 기사에 사용 시 초상권 및 저작권 허가를 받은 것이다.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말 안 듣는 몸 다스리며 꾸준히 운동하기
숨쉬기 운동밖에 할 줄 모르던 내가 필라테스 그룹 수업에 등록했다. 살기 위해 운동해야 한다는 말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요상한 기구에 매달려 몸을 꺾고 있노라면 흡사 고문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어쩜 다들 그리도 유연한지 죽상을 짓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돈 낸 데까지만 다니고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이 깊어만 가던 어느 날, 형광 빛깔 레깅스 차림의 어머님 한 분이 수업에 들어오셨다. ‘고수의 등장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열심히는 움직이지만 거의 모든 동작을 따라 하지 못하는 그녀였다. 그러나 어머님은 주눅 들지 않았다. “아유, 선생님! 저 이게 잘 안 되는데요!” 그녀가 구원의 손길을 요청할 때면 삭막했던 교실에 화기애애한 웃음이 감돌았다. 어느새 수업을 들은 지 반년이 되었다. 운동이라면 손사래를 치던 내가 여태껏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 그녀 덕이 크다. “다리 쭉 펴고 앉은 상태에서 손끝이 발에 닿게 숙여 볼까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모두들 능숙하게 허리를 구부리는데 그녀와 나만 요지부동이다. 눈이 마주친 우리가 희희 웃었다. 우리의 몸이 반으로 접히는 그날까지, 아자!
늦었다 생각 않고 꿈 펼치기
우리 동네 24시간 수퍼마켓은 온 가족이 돌아가며 교대 근무를 한다. 아저씨나 아드님이 아닌 아주머니가 계실 때 장을 보러 가면 특히 즐겁다. “일, 이, 삼, 넷, 오, 육칠여덟! 거스름돈 팔천만 원 여기 있습니다!” 남이 하면 썰렁할 만한 농담이 아주머니의 입을 거치면 윤기가 돈다. 소싯적 개그우먼이 되고 싶었다던 그녀. 그렇게만 됐다면 이영자와 자웅을 겨룰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한번은 내가 계산대 앞에 선 줄도 모르고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시기에 무얼 하시냐 물었더니 그제야 고개를 들고 말씀하시길 “응,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의 뒤를 잇는 유튜브 스타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채널에는 수퍼마켓에서 파는 물건을 소개한다든지 지나가는 고양이와 대화를 시도하는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편집 없는 투박한 영상이었지만 아주머니 특유의 입담만은 변함없었다. 채널 구독자는 일, 이, 삼, 넷, 오, 육칠여덟 명에 불과했다. 나는 그녀의 구독자가 팔천만 명이 되기를 기원하며 구독 버튼을 꾹 눌렀다. 그녀가 영상을 올릴 때마다 울리는 알람이 반갑기만 하다.
노안 극복하고 책 가까이 하기
아빠의 몸에 양성인지 악성인지 모를 종양이 생겨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아빠는 수술도 받기 전에 제멋대로 악성 종양이라는 진단을 내리고서는 마지막 잎새를 헤아리듯 창밖만 내다보았다. 그러지 말고 책이라도 들여다보시라는 나의 말에 월간조선을 사다 달라 청하시기에 기껏 가져다드렸더니만 금세 내려놓으며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영 안 봬!” 노인의 눈은 글을 읽는데 생각보다 큰 노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 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어르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찡그린 눈으로 책을 읽느라 미간에 잡힌 주름도, 책장을 넘기는 건조한 손끝도, 안경을 연신 올렸다 내렸다 하는 분주한 자세마저도 멋들어져 보인다. 무심코 지나쳤던 ‘큰 글자 도서’ 책장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서가보다 한참이나 빈약한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쓰인다. 단행본이 출간되면 전자책이 필수적으로 따라 나오듯 큰 글자 책도 함께 발행되기를 빌어 본다. 참, 아빠의 종양은 양성이었다. 그리하여 조만간 칠순을 맞이하신다. 칠순 선물로 큰 글자 책 한 권 선물해 드려야겠다. 이번에도 안 보인다고는 못 하시겠지?
오늘도 타인의 행동을 매섭게 살피며 공부 거리를 쌓아 나간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닮아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목록만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나의 메모장에 긍정적인 스승의 모습이 더욱 많이 기록되기를, 그리하여 당신을 우러러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아무쪼록 스승님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
☞이주윤씨는
1985년생. 글 쓰고 만화도 그린다. 간호사로 일하다 작가로 데뷔했다. 30대 비혼 여성의 속내를 발랄하게 털어놓은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창작자의 내면에 들끓는 세속적 욕망을 담은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등의 에세이집을 냈다. 사람 속에서는 조용하지만 종이 위에서는 수다스럽다. 애보다는 개를, 술보다는 물을, 말보다는 글을 좋아한다.
기자 프로필
이주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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