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아시는 당신, 지금 뭐 읽으세요? - 경향신문
책 좀 아시는 당신, 지금 뭐 읽으세요?
입력 : 2017.12.29 21:26:00 수정 : 2017.12.29 21:31:33
그의 서가에 꽂힌 책, 아니 그가 바로 이 순간 페이지를 넘기며 읽고 있는 책이 궁금했다.
경향신문 ‘책과삶’은 지난 7월부터 이달 중순까지 격주마다 이름난 애서가들에게 “지금 무슨 책 읽으세요”라고 물었다.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하는 독자이자 직접 책을 쓰는 저자이기도 한 11명의 각계 명사들이 이 질문에 답했다.
2017년 그들이 읽고 있던 책과 추천도서들을 다시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새해에는 우리도 그들처럼 무시로 탐독의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기회가 되면 SF소설이나 청소년문학을 써 보고 싶다”
대중에게 ‘과학 전도사’로 명성이 자자한 그는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부키)를 읽고 있었다. ‘물고기 박사’인 황선도 한국수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이 현장을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인데, 생생한 이야기가 강점이라고 추천했다. 이 책을 사무실에서 읽었다면, 언젠가 SF나 청소년 문학을 쓰겠다는 각오로 지하철에서는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북바이북)를 읽었다.
■ 정혜윤 CBS 라디오 PD
정혜윤 CBS PD 장자크 상페의 <진정한 우정> “삶의 균형을 잡으면서도 우정 덕에 조금 더 멀리까지 걸어가 보는 것이 인생 아닐까”
여러 권의 독서 에세이를 펴낸 그는 당시 삶의 큰 관심사였던 우정을 화두로 한 책을 읽고 있었다. 장자크 상페의 <진정한 우정>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점을 깨우쳤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우정 이야기로 읽었다. 돈키호테 여정에는 항상 산초가 동행하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의 옆에 친구가 있다면 그는 누군가로부터 조금이라도 이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어제의 세계> “팩트나 자료에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회고록 <어제의 세계>(지식공작소)와 플로리안 일리스의 <1913년 세기의 여름>(문학동네)을 추천했다. 두 권 모두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를 다룬 책으로, 1920년대 바우하우스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츠바이크가 오직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 빈의 황금기를 다시 재구성했다면, 일리스의 책은 당시의 자료를 더욱 치밀하게 고증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 문유석 서울동부지방법원 판사
문유석 서울동부지방법원 판사 <신도 버린 사람들> “내가 경험했던 인도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그곳의 냄새나 온도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지하철에서는 진지하고 무거운 책을, 조용한 곳에서는 만화책을 즐겨 읽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출근길에 나렌드라 자다브의 <신도 버린 사람들>(김영사)을 읽으면서 인도 빈민들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꼈고,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애니북스)는 일본 여행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읽고 있었다. 지난 몇 주 동안 조슈아 그린의 <옳고 그름>(시공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읽었다고 밝힌 다독가다.
■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생태계도 인간세계처럼 한쪽으로 몰리면 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10대 청소년들과 꾸준히 만나 온 그는 웹툰이 원작인 <여중생 A>(비아북)를 꼽았다. “지금 10대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북”이라고 말했다. 인문과학서 중에서는 미생물이 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어크로스)와 광기라는 것에 대해 인류학적·의사학적으로 분석한 <광기와 문명>(뿌리와 이파리)을 추천했다.
■ 임형남 가온건축 소장
임형남 가온건축 소장 <백치>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사람의 거의 모든 면을 다루고 있다고 느꼈다”
나이 들면서 소설 읽는 재미를 새롭게 느꼈다고 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읽으면서 줄거리보다 다양한 인물들에 감정이입을 하게 됐다. 윌 듀랜트의 <문명 이야기>(민음사)는 10권짜리 전집으로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스토리텔링 방식이어서 수월하게 읽힌다고 추천했다. 역시 건축가인 아내와 함께 건축 교양서들을 집필해 온 그는 골목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 김영란 전 대법관
김영란 전 대법관 <헌법의 약속> <블루 드레스> “같은 시기를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루고 있어서 함께 읽으면 재미있다”
‘김영란법’ 시행 1주년에 즈음해 인터뷰한 그는 <헌법을 쓰는 시간>(메디치미디어)과 함께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남아공 헌법재판관으로 활동했던 이들이 쓴 <헌법의 약속>(후마니타스)과 <블루드레스>(일월서각)를 권했다. ‘정독가가 되고 싶은 속독가’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그는 리베카 솔닛과 줌파 라히리의 작품,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 조선희의 <세 여자>도 함께 추천했다. 에세이와 전문적인 법률서 사이에 놓인 재미있는 사회과학서를 쓰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 정여울 문학평론가
정여울 문학평론가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성공과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속에 ‘내가 어떻게 살고 있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될 것”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의 대담집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마음산책)을 읽으면서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평소 전자책 오디오북 기능을 널리 활용한다고 밝힌 그는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의 자서전 <카를 융, 기억 꿈 사상>(김영사)을 반복해서 펼쳐본다고 했다. 강연과 저술을 통해 독자들과 끊임없이 만나고 있는 그는 “독서는 점점 깊이를 잃어가는 사회에서 깊이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남자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되기는 어렵다. 평생 공부하고 노력할 생각”
기생충학자 서민은 전공 분야인 데이비드 콰먼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꿈꿀자유)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추리소설을 방불케 할 만큼 재미있다”며 “동물들의 삶을 존중하고 공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혐오 관련 책을 최근에 낸 그는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재해석한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현암사)도 언급했다. 한때 1년에 150권까지도 읽었지만, ‘뜨고 난 후에는’ 한 달에 4~5권 정도 읽는다고도 고백했다.
■ 박성제 MBC 기자
박성제 MBC 기자 <전복과 반전의 순간> “신선한 시각으로 대중문화와 클래식, 재즈를 아우르는 책이다”
인터뷰 당시 MBC 복직을 기대하고 있던 그는 ‘아재’ 감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을 읽고 있었다. 일상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수제오디오를 만든 음악광이기도 한 그는 음악사를 다룬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돌베개)과 함께 남무성이 그린 만화 <Jazz it Up> <Paint it Rock>(북폴리오)도 추천했다. 현재 MBC 취재센터장을 맡고 있다.
■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호모 데우스> “무섭고 피하고 싶은 미래이지만, 피하기 위해서라도 읽어야 한다”
그가 뽑은 ‘올해의 책’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김영사)다. 기술 발달로 인류에게 닥칠 변화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소설로는 니시카와 미와의 <아주 긴 변명>(무소의뿔)을 뽑았는데, 고루한 주제를 예의 바르고 따뜻하게 그렸다는 이유에서다. 소설가들의 인터뷰집인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자음과모음)을 읽고 있다고 밝힌 그는 새해 상반기에만 두 권의 논픽션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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