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걷나요, 느끼면서 걷고 있나요?
장래혁 입력 2019.10.15. 09:51
2016년, 인류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인공지능 알파고는 많은 이들을 경외감을 들게 했고 혹은 두려움을 갖게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업체나 교육청 연수에 가면 인공지능과 대비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부쩍 증가했음을 느낀다.
지구상에 기계문명이 들어선 이후 우리에게 일어난 커다란 변화는 무엇일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신체활동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생수를 사서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기만 하고 발을 쉽게 적시지는 않는다.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에 접어드니 태어난 이후 스크린으로 정보를 받아 뇌에 입력하고, 눈을 감아도 상상을 하지 않고 잠을 잔다. 검색은 하되 사색은 잘 하지 않는다. 더욱이 최근 태어난 아이들은 흙을 밟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IQ 1백년 역사를 저물게 한 장본인 중 하나인 하버드대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1983년 출간한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마음의 틀: 다중지능(Frames of Mind: The Multiple Intelligences)>에서 일곱 가지의 특별한 지능을 제시했다. 음악 지능, 신체 지능, 논리 수학 지능, 공간 지능, 언어 지능, 인간 친화 지능, 자기 성찰 지능이 그것이다.
이후, 10여년이 지난 새롭게 추가한 지능이 바로 ‘자연친화지능’이었고, 다음으로 9번째 지능인 ‘실존지능’이 제시되었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 속에서의 두뇌기제와 보다 근원적인 인간 고유역량에 관한 것이 추가된 셈이다.
인간은 생명체이며, 자연지능을 가진 존재이다. 아스팔트로 뒤덮힌 대지와 모든 것이 연결된 정보화 사회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흙을 밟지 않고, 그러한 생명력을 느끼는 인체 감각을 점차 잃어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집에서 10분 정도를 걸으면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할 수 있는 풀잎길이 나온다. 걷다 보면 어느새 힐링이 되는데, 그때마다 자연이 가진 치유의 힘을 느끼곤 한다. 재미난 것은 주말이 되면 사람들이 자연을 찾아 산과 바다로 나아가지만, 정작 우리 인체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은 쉽게 잊어버린다.
누구나 걸을 수 있지만 걸음을 통해 발현되는 뇌의 반응은 제각기 다르다. 그냥 걷는 것과 느끼면서 걷는 것은 뇌에 다른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뇌교육에서는 운동하는 것은 몸을 좋게 하기보다, 뇌를 깨우는 작용임을 강조한다.
뇌와 몸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면, 땅을 밟는 ‘느낌’, 걷다 보면 몸이 순환하면서 머리가 시원해지는 그 ‘느낌’을 관찰하고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느낀다는 것은 나의 의식이 ‘알아차림’의 인지적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뇌가 기존과는 다른 변화의 상태에 맞닥뜨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좀 더 살펴보자. 우선 넘어지지 않고 걷기 위해서는 뇌를 가진 척수동물의 핵심기능이라는 균형 감각이 지속적으로 발휘되어야 하는 상황이 수반되어야 한다. 동적인 움직임에 따른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몸과 뇌의 신호는 좌우가 서로 교차되며 엄청난 감각 입력과 운동 출력을 주고 받는다. 인간이 지구상 유일한 2족 보행이 가능한 생명체임을 기억하자.
뇌는 기본적으로 바깥에서 정보를 입력받고, 처리해서 출력하는 정보처리기관이라 볼 수 있다. 걷기가 반복되면 뇌와 몸의 연결성을 활성화 하면서 뇌 혈류량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걷는 행위는 뇌로 들어오고 나가는 정보의 대다수를 신체감각정보들이 차지하게 만든다.
걷다보면 뇌 상태에 변화를 주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사람은 이른바 가청주파수라고 하는 20~2만 헤르츠의 주파수 대역만을 들을 수 있는데, 특정 대역의 자극적인 소리를 지속적으로 듣게 되면 심리적으로도 편향적인 상태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물소리, 바람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자주 들을수록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사운드 테라피’ 효과를 가져 온다.
또한 걸을 때는 외부로 나가는 의식을 멈추고, 자기 몸을 느끼면서 걷는 것이 좋다. 스마트 폰으로 대표되는 정보화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의 대부분 우리의 의식이 외부로 향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밖으로 나가 있는 의식을 우선적으로 몸으로 가져와야, 그 다음 내면을 관찰하는 의식이 형성된다.
결국 제대로 걷다 보면 신체근육 곳곳이 자극되고 이완되면서 몸이 편안해지고, 잡념이 점차 없어지면서 뇌파가 안정되는 이른바 ‘이완된 집중상태’가 형성된다. 즉 명상의 초기모드로 접어드는 셈이다. 이 때 주변 어딘가에 앉아 단 5분이라도 조용히 눈을 감아 보면 평소와는 다른 ‘느낌’, 즉 의식의 확장성을 맛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뇌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 다름 아닌 ‘나’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걷는 과정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뇌파는 결국 나의 몸과 뇌가 만들어내는 활동이며, 그 움직임과 의식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자각이다.
서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동양 정신문화의 정수라는 명상은 자신과의 대화라고도 했다. 하루 10분은 외부로 향하는 의식을 잠시 거두고, 이동수단이 아닌 느끼면서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장래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융합학과 교수, 브레인 편집장]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101509510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