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수명 알려주는 텔로미어, 다시 늘릴 수 있다"
입력 2019.10.19. 13:19
스페인 NCIO, 생쥐 실험 첫 성공..수명 13% 연장 확인
생쥐 세포의 길어진 텔로미어(오른쪽)가 붉은 점처럼 핵(푸른색)에 퍼져 있다. [CNIO 제공]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염색체의 말단 소체인 텔로미어(telomere)는 오래전부터 '생명 연장'의 비밀을 풀 열쇠로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염색체의 유전 정보를 보호하는 텔로미어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짧아진다. 세포 분열이 거듭되면서 짧아진 텔로미어가 세포에 쌓이는 건 노화의 특징 중 하나다.
그런데 스페인 과학자들이 살아 있는 생쥐의 텔로미어를 대폭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면, 같은 종의 보통 생쥐보다 훨씬 긴 텔로미어를 가진 생쥐를 생명공학 기술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텔로미어가 길어진 생쥐는, 암과 비만이 덜 생기고, 건강한 상태에서 더 오래 산다고 과학자들은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특히, 유전자를 건드리지 않고 수명을 연장하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유전자 조작 없이 동물(포유류)의 텔로미어를 늘이는 데 성공한 건 처음이다.
이 연구는 스페인 국립 암 연구 센터(CNIO)의 마리아 블라스코 소장이 주도했고, 관련 논문은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다.
17일(현지시간) 온라인에 공개된 논문 개요(링크) 등에 따르면 가장 주목할 부분은, 생쥐의 유전자를 전혀 조작하지 않고 수명만 연장했다는 것이다.
블라스코 연구팀은 이전의 연구에서, 텔로메라아제(텔로미어 연장 효소)를 활성화해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걸 막으면, 부작용 없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수년 전에는 텔로메라아제 합성을 늘리는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해, 암 등 노화 질환을 일으키지 않은 채 생쥐의 수명을 24%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는 유전자 발현을 조작했다는 점에서, 유전자를 건드리지 않은 이번 연구와 다르다고 한다. 그만큼 이번 연구의 의미가 크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번 생쥐 실험에서 연장된 텔로미어에 '하이퍼-롱 텔로미어(hyper-long telomere)'라는 이름을 붙였다.
텔로미어가 길어진 생쥐는, 암이 덜 생기고 물질대사 측면의 노화가 늦춰졌으며, 수명이 평균 13% 늘었다.
구체적으로 콜레스테롤과 LDL(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인슐린·글루코스 내성이 강해지고, DNA 손상이 줄어들고,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향상됐다. 특히 텔로미어는 길어지는 동시에 가늘어져, 텔로미어가 쌓여도 많이 두꺼워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성과로 수명 연장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점에 고무된 분위기다.
실험 결과, 세포의 전분화능(pluripotency) 단계에서 텔로미어 연장을 촉진하는 텔로미어 크로마틴(염색질)의 생화학적 변화는 후성적(epigenetic) 특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이런 변화는 유전자의 작용을 수정하는 화학적 주석으로 기능할 뿐 유전자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CNIO의 '텔로미어 & 텔로메라아제 연구 그룹'의 리더이기도 한 블라스코 소장은 "수명 연장과 관련해 유전자만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라면서 "유전자를 바꾸지 않고도 생명을 연장할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1019131924307?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