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에 이어 전 세계 사망원인 3위 '이것'...발암 돌연변이 유발하는 주범?
반가웠던 봄비 소식이 지나가자, 하늘이 뿌연 미세먼지와 누런 황사로 뒤덮였다. 기상청에 따르면, 오늘 중서부 지방의 미세먼지 농도는 세제곱미터(㎥)당 200μg 안팎으로 평소보다 10배 높았다. 초미세먼지 농도 역시 대부분 지역에서 나쁨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기상청은 올봄 들어 처음으로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 ‘황사 위기 경보’ 주의 단계를 발령했다. '주의' 단계는 황사로 인해 대규모 재난 발생 가능성이 있을 때 내려진다.
비가 지나가자 대기오염 물질이 하늘을 뒤덮었다ㅣ출처: 게티 이미지뱅크
대기오염 물질, 유전자 돌연변이 유발해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손꼽히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인간의 건강에 직접적으로 해를 입힌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700만 명이 대기오염으로 인해 사망한다. 미국 워싱턴대 보건 계량 평가연구소(IHME)에서도 대기오염을 고혈압, 흡연에 이어 세계 사망원인 3위로 지목했다.
이는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가 체내로 들어와 혈류를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며 염증 반응을 일으켜, 뇌졸중과 치매, 과민대장증후군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폐암 발병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WHO에서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한해 2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기오염이 폐암을 일으키는 원리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러던 중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 찰스 스완턴(Charles Swanton)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이 지난 5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를 통해 그 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찰스 스완턴 박사와 연구진은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 연례 학술회의에서 대기오염과 폐암 발병 사이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연구 내용을 살펴보면, 초미세먼지와 같은 대기오염 물질에 꾸준히 노출되면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와 ‘케이-라스(KRAS)’라는 단백질의 유전자에 암 유발 돌연변이가 발생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EGFR 유전자 돌연변이는 비흡연자에서 주로 발견되며 동양인의 주요 폐암 유발 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KRAS 유전자 돌연변이는 서양인의 주요 폐암 유발 원인이다. 그러나, 당시 연구진은 EGFR 유전자 돌연변이가 건강한 폐 세포에서도 희귀하게(60만 개 중 1개) 발견된다는 사실 때문에, 폐암과 대기오염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대기오염에 오래 노출될수록, 돌연변이 발현율 높아
이번 연구에서는 대기오염 물질과 두 유전자 돌연변이의 상호작용을 밝혀내는 데 주력했다. 연구는 한국, 대만, 영국, 캐나다 4개국의 대기오염 정도와 각국의 폐암 환자 3만 2,957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에 등록된 40만 7,509명의 건강 데이터와 캐나다에서 폐암 환자 2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호트 연구 결과를 함께 활용했다.
그 결과, 대기오염 물질에 노출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EGFR 유전자 돌연변이 발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캐나다 코호트 연구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대기오염 물질 노출도를 높음, 중간, 낮음 3단계로 분류한 후 연구에 참여한 폐암 환자의 EGFR 유전자 돌연변이 발현율을 평가했다. 그 결과, 대기오염 물질 노출도가 높음으로 기록된 환자 중 73%가 EGFR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폐암에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대기오염 물질 노출도가 낮음이었던 환자 중 EGFR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폐암 환자는 40%에 불과했다. 이외에도, 연구 대상 국가에 사는 사람 중 대기오염 물질 농도가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EGFR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폐암 위험이 유의미하게 컸다.
연구진은 "EGFR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폐암 대부분이 암세포의 크기가 큰 비소세포폐암이다"라고 말하며,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 사는 비흡연자가 대기오염이 심하지 않은 지역에 사는 흡연자보다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후 진행된 동물실험에서는 대기오염 물질이 유전자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원리가 밝혀졌다. 연구진이 폐암에 걸린 쥐를 대기오염 물질에 노출하자, 일부 면역 세포가 폐에서 염증을 촉발하는 단백질인 '인터루킨1-베타(IL-1β)'를 방출해 유전자 돌연변이의 염증 반응을 악화시켰다. 이후 염증 물질을 차단하는 항체를 주입하자, 염증 반응이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대기오염 물질이 폐에 이미 존재하는 돌연변이를 활성화 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마스크 쓰기와 개인 위생 철저히 해야
미국 보건 영향 연구소(Health Effects Institute)가 2017년 국제 학술지 란셋(Lancet)에 기고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대기오염으로 인한 국내 조기 사망률은 30.5%로 세계에서 4번째로 높았다. 대기오염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사실을 고려하면, 앞으로 조기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외부 활동 시 마스크 쓰기, 외출 후 손 씻기 등 개인위생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대기오염 물질에 노출되면 호흡기나 기관지 점막이 건조해지고 점성이 약화되어, 미세먼지 등이 폐에 도달한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물을 충분히 마셔 체내 수분량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을 마시면 소변이 체내 미세먼지를 바깥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혈중 중금속 농도 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성진규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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