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만드는 요정 이 규 희 본회 회원, 이동문학작가 머나먼 바닷가에 행복을 만드는 요정이 살았습니다. 요정들은 밤마다 별빛과 달빛, 이슬과 새소리, 파도 소리, 꽃향기처럼 아름다운 것을 모아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행복을 만들었습니다. 예쁜 옷감을 짜듯이요 . "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줘야지!" 아침이 되면 요정들은 밤새 만든 행복을 안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날아갔습니다. 어떤 요정은 자동차가 붕붕거리는 큰 도시로 가고, 또 어떤 요정은 외딴 마을로 갔습니다. 요정은 이곳 저곳 다니며 부지런히 사람들 몰래 행복을 나눠주었습니다. 벽에 걸린 양복 저고리 안에 살그머니 넣기도 하고, 반가운 편지와 함께 우편함 속에 넣기도 했습니다. 또 안방 화장대 서랍이나, 부엌의 잘 닦인 냄비 속에 보물 쪽지처럼 숨겨 두기도 했습니다. 행복을 받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음 가득 샘물 같은 기쁨이 찰랑찰랑 차 올랐으니까요. "아, 정말 행복하다!" 사람들 입에서 행복하다는 말이 노래처럼 흘러 나왔습니다. 요정들은 이 말을 들을 때가 제일 좋았습니다. 그래서 밤잠도 잊고 행복을 만들었습니다. 물에 젖은 솜처럼 온몸이 피곤해도 마냥 기뻤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행복을 나눠주는 요정들이 시무룩한 얼굴로 되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왜 그러세요?" 행복 꾸러미를 되가지고 온 키다리 요정을 보며 작은 요정이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우리가 준 행복을 받고 사탕을 입에 문 아이처럼 좋아했는데, 지금은 모두 심통이 난 것처럼 볼이 잔뜩 부어 있어요." "그래요, 이제 누구도 행복하다고 안해요." 지금 막 돌아온 요정도 지친 얼굴로 말했습니다. 요정은 슬픈 얼굴로 자기가 되가져온 행복을 창고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영롱한 이슬과 은은한 달빛, 물새 소리를 곱게 빚어서 새로운 행복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행복을 되가져오는 요정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요정나라 창고에는 행복이 가득가득 쌓였습니다. 요정들은 커다란 바위에서 회의를 열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달라졌을까요?" 나이가 제일 많은 요정이 물었습니다. 지혜가 뛰어난 요정이 대답했습니다. "그건, 저 깊은 동굴에 사는 마녀들 때문이에요, 마녀들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무엇인가 나눠주는 걸 보았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주는 행복보다 그걸 더 좋아해요." "도대체 그게 뭐지요?" "욕심이라는 겁니다. 그걸 가진 후부터 사람들은 저희가 주는 행복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욕심이라구요?" "우리가 주는 행복보다 더 좋은 건가요?" 나이 어린 요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습니다. 욕심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그걸 가지면 '좀더...' 하는 병에 걸리게 되요. 좀더 부자였으면, 좀더 큰 집을 가졌으면, 좀더 좋은 차를 가졌으면, 좀더 잘 생겼으면, 좀더 예뻤으면....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행복을 나눠줘도 늘 '좀더 행복했으면...'하고 생각한답니다." "어쩜 그럴수가!" 요정들은 힘이 쭈욱 빠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녀들이 만든 '욕심'을 당해 낼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앞으로 우린 어쩌면 좋을까요?" "구태여 힘들게 행복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도 이제 다른 요정처럼 이 꽃 저 꽃 옮겨다니며 한가롭게 노는 게 어때요?" "그래요 우리가 만든 행복이 창고에 저렇게 쌓여 있는데 자꾸 만들면 뭐 해요." "차라리 밤에 잠이나 실컷 잘래요." 요정들은 너도 나도 한 마디씩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지혜로운 요정이 손을 내저으면 말했습니다. "그건 안 될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행복을 나눠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마녀가 만든 욕심만 잔뜩 받게 될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모두 욕심쟁이가 되고 말 거에요.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행복을 나눠줘야 합니다." "사람들이 저희가 준 행복을 좋아하지 않는데도요?" "그럼요! 우리가 주는 행복을 받고 기뻐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에요. 단 한 명이라도 우린 가야 해요!" 요정들은 곰곰히 생각을 했습니다. 행복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씩 떠올랐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빙그레 웃으며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 생선 장수 아줌마, 미술 시간에 만든 카네이션을 들고 집으로 팔랑팔랑 뛰어가던 아이의 얼굴, 씨를 뿌리고 나서 허리춤에 찬 수건으로 구슬땀을 닦던 농부, 이른 새벽 신문을 돌리며 해말게 웃던 소녀 가장…. 정말이지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요정이 주는 행복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분명했습니다. "그래, 아직도 우리가 주는 행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야."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가 아냐, 오늘은 새해 아침이란 말야." "그래요, 서둘러 새해 선물을 나눠줘야 해요!" 제일 나이 어린 요정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다른 요정도 하나 둘 창고로 들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행복을 가슴에 안고 나왔습니다. "너무 늦었어, 서둘러야 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기 위해 사르르 사르르 날아가는 요정들의 모습이 눈꽃송이처럼 빛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