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새옹지마 아닌 새옹지차 김 대 수 본회 회원, 수필가, 대한감정평가법인 이사 세상사 못 했다고 속절없이 포기하지도 말고, 잘되었다고 춤을 추며 들뜰 일도 아니다. 또한 빠르거나 늦었다고 자만하거나 조바심을 가질 것도 아니다. 열심히 일하되 여유 있게 사고하고 여유 있게 대처하며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게 최상이고 최선이란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지 않던가 아니다. 이 번의 내 경우는 ‘새옹지차(塞翁之車)’라 해야 맞지 않겠는가. 열차를 타기 위해 힘껏 달렸으나 개찰구에 닿고 보니 열차는 이미 떠나 꽁무니를 사리고 있었다. 서운했다. 아니 허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한 쇳덩이다. 시간에 닿으려고 숨이 목에 차오도록 달려왔으나 자동차에 막히고 신호등에 걸려 결국 놓치고 만 것이다. 단 1분, 아니 몇 초라는 간발의 차로 목적을 놓쳐버린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는가. 매정한 세상이다. 하기야 어디 열차뿐이겠는가. 서서 자고, 서서 먹으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 1분 1초란 생명과도 같은 존재, 절대적인 가치다. 하지만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그 1분 1초가 60분 한 시간을 채우기 위한 충분조건으로서만이 아니라, 달리 생각해 보면, 인생을 관조하고 삶을 되새겨보는 여유나 유예의 기회로도 그 잠깐의 의미는 결코 무시할 수 없겠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 강원도 소도시에 토지조사를 하러 간 일이 있었다. 당시 도시를 관통하는 도로는 왕복 2차선 하나뿐이었다. 서울에서 이곳까지의 교통수단은 주로 열차에 의존하고 있었다. 청량리역에서 오전 10시에 떠나면 오후 2시 30분에 도착했고, 거기서 청량리행 열차는 오후 4시 15분에 있었다. 낮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45분 정도, 조사할 토지는 도심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있었고, 일의 양은 많지 않았다. 현장을 익히 알기 때문에 그 시간으로도 충분히 일을 끝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워낙 주어진 시간이 짧아, 미리 청량리행 열차표를 예매하고,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택시를 대절하여 역 광장을 서둘러 빠져 나왔다. 토지 조사는 그 토지가 어떤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지, 도로관계는 어떤지, 경사도는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역에서 현장까지는 약 30분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택시기사는 20분이면 된다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10분이나 여유가 있는 셈이니 조급했던 마음에 약간은 여유가 생겼다. 마음이 급하면 자동차가 제대로 달리고 있어도 왜 그리도 느리게 느껴지고 초조해지는지 모를 일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는데, 이럴 때는 마음을 느긋하게 갖는 게 좋다. 급하다고 곡예운전을 하랄 수는 없지 않은가. 현장은 얼마 전에 근처를 조사했기에 경사가 급한 쓸모 없는 밭으로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조사를 해 보니 경사가 완만한 좋은 밭이었다. 역시 마음의 도움 없이는 보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들어도 제대로 듣지 못한다고 하더니, 부근까지 와서도 주위를 대강 둘러보았기에 그런 속단을 한 것 같았다. ‘심부재언(心不在焉)이면 시이불견(視而不見)’이란 말이 옳았다. 토지조사가 끝나고 택시를 탔을 때는 열차 출발 35분 전이었다. 이정도면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도시 외곽지역에서는 거침없이 잘 달렸으나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번화가에 도달하니 도로 양방향을 자동차가 메우고 있어서 주자창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열차 출발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초조해졌다. 시계의 초침은 걸리는 것이 없으므로 더욱더 잘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꼼작하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열차 출발 5분전, 역까지 거리는 500미터 남았다. 여유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너무 촉박하게 되었다. 택시비는 미리 계산을 끝났다. 열차가 조금이라도 연착되었으면 좋겠다. 드디어 역 광장에 도착한 것은 열차가 출발하는 바로 그 시간이었다. 택시에서 내려서 곧 개찰구를 향해 힘껏 달렸다. 하지만 최선도 허사,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멀어져 가는 열차의 꽁무니만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차는 정시에 출발한 것이다. 식은땀이 흐르면서 힘이 쭉 빠졌다. 원망스러웠다. 허전했다. 할 일없이 텅 빈 대합실 낡은 의자에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이제 서울 가는 열차는 밤 12시경에나 있다. 1분 1초가 그렇게도 급하더니, 이젠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단 1분의 시간차로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상황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몸체에서 떨어져 나온 자투리 시간은 영영 쓸모가 없단 말인가. 텅 빈 대합실에서 언제까지만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났다. 이 참에 만나볼 사람도 한둘 있으므로 거래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부서에 들렸더니 아주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뿐인가,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하려 했다면서 가까운 곳에 있는 토지이니 서둘러 일을 마쳐 달라는 부탁이었다.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다. 열차를 놓쳐버린 나 같은 사람도 쓸모가 있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세상일 속절없이 포기하고 서둘러 좌절할게 아니란 생각을 했다. 열차 출발시간에 닿아 훌쩍 떠났다면, 일 일을 위해 또 와야하는데 겹치기로 토지조사를 마쳤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얼마나 고마운 그 ‘늦은 1분‘인가. 일도 끝났고 밤도 깊었다. 한 잔 술이 기분 좋게 취기를 주어 야간열차의 침대칸은 부드러웠다. 바쁘기도 하고 한가하기도 했던 하루, 눈을 감고 지난 하루의 일을 곰곰히 생각하니 희비가 엇갈린다. 감회가 깊다. 놓친 열차가 밉기도 하고, 놓치게 한 그 1분이 고맙기도 하다. 그렇다. 세상사(世上事) 못 했다고 속절없이 포기하지도 말고, 잘되었다고 춤을 추며 들뜰 일도 아니다. 또한 빠르거나 늦었다고 자만하거나 조바심을 가질 것도 아니다. 열심히 일하되, 여유 있게 사고하고, 여유 있게 대처하며,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게 최상이고 최선이란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지 않던가, 아니다 이번의 내 경우는 새옹지마가 아니라 ‘새옹지차(塞翁之車)’라 해야 맞지 않겠는가. 인생사 새옹지차, 하루 일을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밤차에 몸을 실으니 기분이 좋다. 꽤나 많은 논두렁 밭두렁을 오르내렸으나 몸도 마음도 무겁지 않다. 상쾌하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촌가의 등불도 고향마을이 반딧불처럼 정답기만 하다. 모두 다 놓친 열차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