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김원희입니다. 새해를 시작한지 어제 인 것 같은데 벌써 2월입니다. 1월에 다짐하고 계획했던 것들을 잊지 않고자 애쓰는 요즘입니다.
저는 오늘 저의 꿈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꿈을 꾸게 된 가장 큰 이유가 횃불장학회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저의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제가 북한에서 와서 정착해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임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처음으로 장학금을 받을 당시의 저의 상황은 기초 수급자이자 한부모 가정이었고 어머니는 건강 악화로 무직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사는 것 외에는 삶을 사는 방법을 몰랐기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주어진 상황을 이겨내보고자 열심히 살았습니다. 나중에 북한이탈주민 대상으로 장학금을 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학교와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살다 보니 이런 정보를 몰랐습니다. 기초가 부족해 진도를 따라가려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몇 배로 열심히 공부해야 했지만 일을 끝내고 오면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봤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휴학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횃불 장학회를 만나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가장 큰 걱정이었던 어머니 병원비를 해결하고 나니 숨이 쉬어졌습니다. 대학교를 간 가장 큰 이유는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다름”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다름은 매력적이지만, 어떤 다름은 차별이 됩니다. 저의 “다름”이 차별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온 곳은 가난하고 자유가 없는 독재국가라는 것이 대한민국과 다른 점이었고 그 다른 점은 열등함과 같이 판단되었습니다. “열등한 사람” “열등한 존재”라는 것이 저를 오랫동안 괴롭혔습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저소득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다문화 가정들....저는 이 사람들이 차별에 함몰되지 않고 이 사회에 어느 부분에서 본인의 자리를 마련하고 삶을 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꿈과 바램이 있었으나 제 상황은 제 삶 하나 살아내기도 버거웠습니다. 그러나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장학회 회원분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포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말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항상 벼랑 끝에 혼자 서서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장학금을 받으며 누군가는 뒤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하면서 학문적으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석사는 기본인 분야여서 더 그랬습니다. 학부를 졸업한 것만으로는 제가 하고자 했던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다문화와 저소득층에서도 어린 아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다음 세대가 있어야 이 나라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꿈 하나 가지고 석사 1학기 등록금 대출받아 등록했습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횃불장학회에서 지원해주시고 아르바이트해서 충당했습니다. 그렇게 논문을 쓰고 졸업을 한 것이 최근 저의 근황입니다.
남북통합센터에 있는 북한이탈주민 아동을 위한 상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교수님께서 미국 유학을 권유해 주셨습니다. 다문화 심리에 관심을 가지고 난 후부터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다문화 관련 연구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이루어져 있기도 했고 그곳에서 공부하고 오면 한국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항상 망설였고 너무 멀고 큰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일을 하면서 유학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토플 시험을 봐야 하는 것이 첫 단계였습니다. 교재를 사서 혼자 공부해보니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원을 가려고 했는데 학원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회장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의 상황을 글로 적어보내면 이사회와 토론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전화를 받고 나니 유학이라는 꿈에 조금은 다가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항상 나 혼자만을 사는 것이 아닌 함께 사는 삶을 꿈꿨습니다. 그 꿈을 꿀 수 있었던 데에는 장학회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치를 두고 장학금을 주는 모습을 봐와서 였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