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포장의 작은 글자, 놓쳐선 안 되는 이유| Daum라이프
약 포장의 작은 글자, 놓쳐선 안 되는 이유
헬스조선 | 정재훈 약사 | 입력 2017.06.29 13:59 | 수정 2017.06.29 14:16
약 포장 뒷면에 적힌 문구 한 줄, 얼마나 중요할까? 읽다보면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약 포장에 적힌 작은 글자는 무척 중요하다. 진해거담제와 안약, 비강스프레이를 예로 들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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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거담제, 복용 시간이 부작용 좌우가래 제거에 도움이 된다는 아세틸시스테인 성분의 한 진해거담제 뒷면을 보자. ‘식전에 소량의 물과 함께 복용 한다’는 말이 적혀 있지만, 명령문은 아니다. 왠지 무시하고 식후에 먹어도 괜찮을 거 같다. 식후에 먹을 약을 식전에 먹으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식전약을 식후에 복용하는 일이야 뭐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약의 사용에 있어서는 종종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짧은 문구 한 줄 이라도 잘 살펴보고 그대로 따라야 효과를 최대로, 부작용은 최소로 할 수 있다.
진해거담제를 식전 소량의 물과 함께 복용하라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진해거담제는 호흡기의 끈끈한 점액을 묽게 만들어서 가래를 쉽게 배출하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위 속에도 점액이 있다는 것이다. 위 안에서 점액의 역할은 위산에 의해 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인데, 이 약은 위 속 점액과 기관지의 점액을 구별할 수 없다. 진해거담제가 위에 오래 머물면 위점막을 감싸고 있는 점액을 분해하여, 위산의 공격에 취약해지고 속쓰림을 느끼게 된다. 식전에 소량의 물과 함께 복용하면 약이 위에 오래 머물지 않고 금방장으로 내려가서 흡수되므로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보통 위장에 부담을 주는 약은 식후에 복용하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데 반해, 아세틸시스테인과 같은 일부 진해거담제는 도리어 식전에 복용해야 위에 부담이 덜한 이유다.
‘디테일’ 놓치면 안 되는 안약안약 사용 시에도 디테일이 중요하다. 사용기한이나 사용법이 안약에 잘 적혀 있지만, 읽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다. 우선 안약의 사용기한 문제부터 살펴보자. 얼마 전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안약을 개봉하고 나면 1개월만 사용하고 버려야 한다는 설명을 하니 바로 청취자 질문이 들어왔다. 정말 딱 한 달만 쓰고 버려야 하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답은 ‘그렇다’이다. 안약에 적혀있는 사용기한은 개봉 전까지만 유효하다. 개봉 뒤에는 세균 오염과 변질 위험이 생겨, 한 달까지만 쓰고 버려야 한다. 무보존제 일회용 안약은 한 번 쓰고 버려야한다. 이렇게 엄격한 것은 소중한 우리 눈에 사용하는 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약은 제조 시에도 다른 제형 약에 비해 더 엄격한 기준에 따라 멸균정제수만을 사용하여 만든다. 안약은 사용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보통 눈에 안약을 넣으면 ‘깜박깜박’하는 동작을 취한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사용법이다. 안약 대부분이 눈 밖으로 새어나가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있을 때 안구가 수용할 수 있는 액체의 부피는 30마이크로리터(1mcL = 0.001mL) 정도다. 안약 한 방울의 부피는 50마이크로리터이다. 한 방울만 넣어도 넘치는 용량이다. 눈을 깜박거리면 안구 주변의 액체 수용 공간이 줄어들면서 기껏 넣은 안약의 대부분이 새어 나간다.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안약을 사용할 때는 최소 5분 이상의 간격을 두라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낭비를 막기 위함이다. 어떻게 하면 안약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작은 디테일 몇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첫째, 안약을 넣을 때 아래 눈꺼풀을 잡아당겨 작은 주머니 같은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안약을 떨어뜨린다. 이렇게 하면 놀라서 안약 용기 끝이 눈에 닿아서 안구가 다치거나 손상될 위험도 줄어들고, 안약 내용물이 오염되는 것도 막아준다. 동시에, 반사적으로 눈을 깜박거릴 가능성도 줄여줄 수 있다. 둘째, 안약을 넣고 나면 눈을 지그시 감은 다음 1~2분간 계속 감고 있어야 한다. 1~2분간 눈과 코 사이 눈물길을 양손 집게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러 안약이 코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녹내장 환자의 안압을 떨어뜨리는 안약 성분이 코로 흘러들어가 인체 내로 흡수되면 혈압이 떨어질 수도 있어, 이러한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숙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녹내장 치료를 위한 안약의 사용설명서에는 ‘질환이 있는 눈에 1회 1방울 1일 1회 점안한다’고 되어 있지만, 눈이 건조할 때 사용하는 인공 눈물 안약에는 ‘1회 1~3방울 점안’이라고 되어 있다. 두세 방울을 넣어봤자 다 새나간다면서, 왜 이렇게 설명되어 있을까? 바로 각각의 약 성분이 내는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녹내장 치료를 위한 안약의 경우 효과가 비교적 강력하므로, 사용량에 특별히 주의가 필요하다. 반면 인공눈물 안약에 들어있는 성분은 필요량보다 더 써도 별다른 부작용이 없을뿐더러, 약값도 저렴한 편이어서 넉넉하게 사용할 것을 권하는 것이다. 분무제, 필요할 때 짧게 써야 코에 분무제(비강스프레이)를 사용할 때도 디테일은 중요하다. 코의 가운데 부분은 연골로 되어 있어서 손상되기 쉽다. 코 안에 스프레이를 뿌릴 때는 약이 가운데(비중격)가 아니라 바깥쪽을 향하도록 뿌려주어야 하고, 콧속 깊은 곳에 약을 뿌렸다가는 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 콧구멍 아래쪽의 더 넒은 공간에 고르게 분무될 수 있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약을 뿌리자마자 코를 풀면 약 성분이 콧물과 함께 흘러나오므로 바로 코를 풀거나 재채기를 하지 않는 게 좋다.
특히 처음 약을 사용할 때나, 1~2주 이상 약을 사용하지 않다가 쓰면 제대로 분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는 사람 얼굴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허공에 대고 두세번 시험 분무를 해주는 준비 동작이 필요하다. 또한 코막힘에 사용하는 비충혈 제거 스프레이는 너무 오랫동안 계속 사용하면 약으로 인해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필요할 때만 짧게 쓰는 게 좋다. 독일의 저명한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는 말은 약 사용에도 통한다. 기억하자. 약 사용에서 신의 한 수는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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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홍보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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