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의 근원' 장시간 앉아 있기 … 사망확률 20%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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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일상 속에는 '앉기'가 생활화돼 있다. 식사나 공부, 자동차 운전, 컴퓨터 사용, TV 시청 등이 모두 앉은 자세에서 이뤄진다. 지난해 12월 30일 발간된 2021년 질병관리청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은 하루 평균 8.9시간을 앉아서 보낸다. 하루 24시간 중 3분의 1 이상을 앉아 지내는 것이다. 4명 중 1명(24.6%)은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에 12시간을 넘는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생활습관을 경고한다. 좌식 생활이 혈당 수치나 심장병 위험을 높이고, 무릎 관절 질환이나 혈전 발생을 유발하는 등 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대인이 앉아서 지내는 시간은 증가하는 추세다. 2020년 당시 19세 이상 성인이 하루 평균 앉아서 보내는 시간은 8.6시간이었다. 2019년에는 8.6시간, 2018년에는 8.3시간, 2017년에는 8.2시간으로 나타났다. 현대인의 건강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2일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 따르면 존 미셸 일차의료및인구보건학부 교수 연구팀은 앉아 있는 시간이 늘면 뇌 기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역학 및 지역사회 건강 저널'에 최근 발표했다. 앉아 있는 시간이 늘수록 기억력과 사고 능력의 저하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분석은 1970년 영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건강을 추적하는 연구인 '1970 브리티시 코호트 스터디' 데이터를 활용해 도출했다. 이 연구 참가자들 중 4481명은 2016~2018년 활동 추적기를 착용하고 생활습관 등 정보를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 이들은 자신의 건강이나 생활습관에 대한 설문에도 응답했으며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일련의 인지 능력 테스트도 진행했다.
연구팀이 관련 데이터들을 종합해 분석한 결과,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참가자들의 테스트 점수가 낮았다. '8분'이 결과를 갈랐다. 하루에 앉아 있는 시간이 8분 이상 더 긴 참가자들의 경우 해당 시간에 신체활동을 한 참가자들에 비해 테스트 점수가 평균 2% 낮았다. 연구팀은 "신체활동을 할 때 심장 기능이 강화돼 뇌로 혈액 공급이 원활해져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며 "앉아 있는 시간에 쓸 8분을 운동으로 대체하면 인지 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앉아 있는 생활습관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1950년대 영국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주로 앉아서 일하는 버스 운전기사가 서서 승객들에게 하차지를 안내하고 요금 징수를 하는 버스 안내양에 비해 심장마비를 겪을 가능성이 약 2배 더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버스 운전기사와 버스 안내양은 버스라는 동일한 근무환경에서 일하지만 '앉는다' 혹은 '서 있는다'의 차이로 건강 상태에서 극명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앉는 것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쏟아졌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리로 흘러가는 혈류가 감소해 다리 부종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근골격계 장애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진대사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혈압이나 암, 당뇨병 등 질환과의 연관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장기간의 추적조사 결과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암협회는 좌식 생활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21년간 추적조사해 2018년에 공개했다. 12만5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6시간 이상 앉아 있는 사람들은 6시간 미만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에 비해 사망 확률이 약 19%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암이나 뇌졸중, 당뇨병, 신장 질환,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으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당뇨병연맹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때 전 세계 당뇨병 환자가 급증했는데, 이 역시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좌식 생활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건 과학계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이제 과학자들은 이런 악영향을 타파할 수 있는 해답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다. 생각보다 답이 간단하다는 분석도 같이 얻고 있다. 산책 등 가벼운 신체활동만으로도 좌식 생활의 악영향을 뚜렷하게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30분마다 5분간 가벼운 걷기를 하면 앉기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스포츠와 운동 의과학'에 지난 1월 발표했다. 연구팀은 성인 실험 참가자 11명을 모집해 5개 그룹으로 나눴다. 아예 걷지 않는 그룹과 30분마다 1분씩 걷는 그룹, 5분씩 걷는 그룹, 1시간마다 1분씩 걷는 그룹, 5분씩 걷는 그룹이다. 이들은 5일 동안 8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지내며 화장실을 가거나 걸을 때만 일어났다. 걷는 속도는 시속 3㎞로 지정했다. 이는 건강한 일반인의 걷는 속도보다 느린 것이다. 연구팀은 그룹별로 걷게 만든 다음 혈당과 혈압의 변화를 각각 15분, 60분마다 측정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최적의 신체활동 시간을 찾았다. 30분마다 5분씩 걸었을 때 혈당이 현저히 떨어졌다. 혈당 상승폭은 하루 종일 앉아 있을 때에 비해 58% 감소했다. 연구팀은 "근육은 혈당 조절에 중요 역할을 하는데,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근육이 수축하며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면서 "5분간 걷는 것으로 근육이 역할을 하도록 했다"고 분석했다.
혈압은 1시간마다 1분만 걸어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에 비해 혈압을 4~5㎜Hg가량 낮춰줬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의 기분과 피로도도 측정했는데, 걷기 운동으로 피로가 줄고 기분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건강한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했다"며 "만성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겐 가벼운 신체활동의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도 비슷한 연구를 내놓았다. 연구팀은 지난해 8월 30분마다 3분씩 걷거나 계단을 오르면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에 비해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혈당 수치가 떨어진다는 분석을 내놨다. 핀란드 투르쿠대 연구팀은 하루에 1시간씩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면 공복 혈당 등 심장 대사지표와 간 기능 수치가 개선된다는 연구를 지난해 5월 공개했다. 과학자들은 사무직 등 하루 종일 앉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직장인들에게 업무 시간에 '최대한 몸을 움직여라' '가벼운 활동이라도 안 움직이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은 30~40분 정도 운동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성인은 매주 최소 150분 이상 운동할 것을 권고한다. 한국 보건복지부 역시 1주일에 최소 빠르게 걷기 150분을 권장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19세 이상 걷기 실천율은 2021년 기준 남자 37.9%, 여자 41.4%로 낮다. 걷기 실천율은 1주일 동안 걷기를 1회 10분 이상, 1일 총 30분 이상 주 5일 이상 실천한 분율을 따진 것이다.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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