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깜빡깜빡, 귓가엔 "삑~"…알고 보니 치매·우울증 신호?
경도인지장애는 치매의 전(前) 단계로, 또래보다 기억력 등 인지기능이 떨어진 상태다. 경도인지장애 단계인 사람의 10% 내에서 알츠하이머병(치매 일종)이나 다른 치매로 진행해 경도인지장애는 '치매의 길목'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이명이 동반됐을 때, 이명이 '그 사람에게 치매·우울증이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일종의 신호등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한상윤 교수와 서울시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김영호 교수 공동 연구팀은 60~80세의 경도인지장애 환자 가운데 청력 수준이 40dB(데시벨) 이하인 성인 30명을 △최근 6개월 이상 이명이 동반된 그룹(7명) △동반되지 않은 그룹(23명)으로 나눠 자기공명영상(MRI)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을 활용해 뇌의 활성화 영역, 아밀로이드 침착, 대사 활동 등을 분석했다. 정상 성인의 청력은 평균 0~20dB이며, 낮을수록 해당 수치에 해당하는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 결과, 이명이 동반된 경도인지장애 환자군은 이명이 없는 환자군보다 대뇌 측두엽, 그중에서도 상측 측두회와 측두극에서 치매 유발 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가 유독 더 많이 쌓여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뇌 속에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침전물인 플라크를 생성해 알츠하이머병을 발병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도인지장애 환자 중에서도 이명이 있을 때 치매가 찾아올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이명이 동반된 환자군은 뇌의 하전두엽, 섬엽, 전대상피질에서 대사활동이 유독 활발했다. 이명의 심각도 역시 이들 뇌 부위의 부피(상전두·섬염·전대상피질)와 밀접하게 연관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명이 동반된 환자군의 대사활동은 휴식 상태와 관련 있는 '기본모드 신경망'(DMN, Default Mode Network)에서 더 활발했고, 목표지향적 행동, 문제 해결과 관련 있는 '실행제어 신경망'(ECN, Executive Control Network)에선 상대적으로 활동이 낮았다.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의 DMN 회로가 과도하게 항진돼있는데, 이는 우울증 환자가 쉴 때 쉬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안 좋은 일들을 계속 떠올리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이명이 동반되면 우울증이 찾아올 위험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한상윤 교수는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서 이명이 동반됐을 때 뇌 측두엽에서 베타 아밀로이드가 많이 쌓인다는 점, 이명이 뇌의 대사활동 변화를 확인하는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영호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이명이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측두엽 퇴행,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조기 지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향후 이명이 (치매를 부르는) 측두엽 퇴행, 우울증을 예방하거나 조기 진단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한상윤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와 김영호 서울시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사진=각 병원한상윤 교수와 김영호 교수(공동저자 김희정 박사, 서울대 의대 이민재 교수, 윤예진 연구원, 서울시보라매병원 이준영 교수, 박선원 교수, 김유경 교수)가 공동 진행한 이번 연구는 '이명을 동반한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뇌 구조적, 기능적 차이에 대한 비교 연구'란 제목의 논문으로 지난달 국제학술지 '노화신경과학 최신 연구'(Frontiers in Aging Neuroscience) 온라인판에 실렸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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