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관리만큼 중요한 건 신체기능 유지와 일상의 힘”
노년내과 교수가 강조하는 ‘건강하게 나이 드는 법’
근력, 식사, 긍정적 태도가 건강수명 늘리는 데 중요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기대수명은 83.8년(2021년 기준)으로 일본과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3위다. 기대수명 가운데 건강을 유지하는 기간인 건강수명은 61.9년이다. 나머지 21.9년은 질병과 부상으로 병치레하는 셈이다. 이 기간을 줄여 건강수명을 늘리는 것을 '건강노화'라고 할 수 있다. 건강노화 전문가 김창오(53)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강조한 건강노화 목표는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 기능'이다. 이를 어떻게 하면 실현할 수 있을까. 새해를 맞아 김 교수와 그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창오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 ⓒ시사저널 박정훈같은 1년이라도 0.5년 늙어 보이는 사람과 2년 늙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 개인마다 '노화 속도'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보면 유전적 소인과 후천적 요인이 있다. 후천적 요인으로는 질병 유무와 환경적 요인 등 수없이 많을 것이다. 노화는 특정 질환이 아니어서 다양한 변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전은 어떻게 할 수 없더라도 후천적 요인은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 듦의 모습은 매우 다양해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다만 많은 어르신을 만난 경험상, 일반적으로 생애 고비가 있다. 그 고비는 70대 중후반에 찾아온다. 건강수명이 늘어나므로 현재 50~60대는 그 고비를 80대 초중반에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70대 초반까지 본인은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어르신이 꽤 많다. 일상생활을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로든 입원한다. 폐렴을 예로 들자
폐렴 치료는 노인이나 젊은이나 똑같이 항생제를 사용하면서 염증 수치나 증상이 호전되면 1~2주, 길어야 한 달 내에 퇴원한다. 그런데 병원에 걸어서 왔던 사람이 걸어서 나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주일만 누워있어도 근력의 3분의 1이 감소하는데 한 달 정도 입원하면 본인 혼자 걷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병원이라는 낯선 환경 때문에 입맛도 잃는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이 확 무너진다. 어찌어찌해서 퇴원하고 몇 주 후 검사할 때 그 어르신을 만나보면 식욕이 없다는 등, 기력이 없다는 등 하소연한다. 검사해 보면 정상이다.
병원을 찾아온 어르신은 대부분 만성 질환을 잘 관리하고 있다.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어보면 기력이 떨어지고 입맛이 없다고 한다. 또 최근 근감소증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자신이 근감소증은 아닌지 불안해한다. 사실 근감소증이라고 해도 특별한 치료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자는 것밖에 없다. 그러면 어르신은 '너도 늙어봐라' 하는 눈빛으로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자는 것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적극적으로 유도하면 변하는 어르신이 있다.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자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 고비를 넘기면 80~90대에는 큰 문제가 없다. 어떤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도 70대보다 잘 극복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
그 고비가 모두에게 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순탄하게 노후를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작은 문제로 인해 입원하게 되더라도, 퇴원 후의 관리가 더 큰 문제라는 점이다. 퇴원이 끝이 아니라 신체적 기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환자와 보호자가 인지해야 한다. 먹고 움직이는 일상을 혼자 할 수 있으면 당뇨병·고혈압·암이 있다 한들 혼자 병원에 다니면서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질병이 없더라도 신체적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주변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고 눈치를 보게 된다.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즉 본인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느냐가 노인학에서 강조하는 건강수명의 기본이다."
80대인데도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지병이 없는 사람도 있나.
"물론이다. 그런데 지병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일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일을 계획할 수 있으면 건강한 것이다. 약을 제때 먹으면서 그 계획을 실천할 수 있으면 된다."
서울 용산구 용산가족공원 내 체육시설에서 노인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현미보다 평소 먹던 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신체적 기능을 강조했는데, 기능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근력 특히 다리 근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걷는다. 걷기를 기본으로 하되, 추가로 근력 운동을 병행할 것을 권한다. 이렇게 해서 근력을 축적해 놓으면 소진될 때 완만하게 소진된다. 같은 고비를 겪더라도 근력이 부족한 사람은 더 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약간 과체중이 노년 건강에 유리할 수 있다. 물론 체중을 구성하는 요소를 잘 분석해야 하는데, 지방이 많으면 체중을 빼는 것이 맞다. 그러나 노인이 너무 슬림한 것은 좋지 않다."
새해 결심으로 시작한 근력 운동이 금세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또 운동을 약하게 하자니 효과가 없을 것 같고 강하게 하면 힘들어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운동에 대한 근거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연구에서는 강도가 낮아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반면, 강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중장년층이라면 몰라도 노년층에겐 그런 운동 목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매일 1만 보를 반드시 걷는다고 한다. 안 걷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근시안적으로 올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 그냥 밥 먹듯이 움직임을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 주변 공원에 가면 운동시설이 다양한데 그것들을 이용하면 된다. 추운 날씨에는 실내에서 다리 올리기 운동이나 실내자전거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걷기는 기본이고, 주변을 둘러보면 근력 증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래서 노년기에 체중을 빼기 위한 절식이나 단식은 좋지 않을 듯하다.
"과거에는 조금 먹어야 오래 산다고 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상황에 맞춰 생각해볼 일이다. 본래 적게 먹어온 사람은 그대로 유지해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고비가 왔을 때 축적해둔 근력이 워낙 적으면 위험하다. 따라서 노인이 적게 먹는 것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평소 먹던 양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노화에 매우 중요하다. 또 상식 선에서 골고루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식습관이 좋을 리 없다. 본인은 정작 자신의 식사량이나 식습관을 잘 모를 수 있다. 같이 사는 가족이 더 잘 안다. 가족의 말을 들어보고 본인의 식사량이 줄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흰쌀밥보다 현미를 찾는 사람이 많은데….
"영양학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현미 섭취가 필요한 질환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식욕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미를 먹고 식욕이 떨어진다면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 흰쌀밥을 먹어 식욕을 잃지 않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현미든 흰쌀밥이든, 중요한 것은 본인이 정한 식사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평소 현미를 먹을 정도면 이미 건강한 상태일 텐데 그것은 현미를 먹어서가 아니라 다른 요인으로 건강한 것이다. 현미를 먹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현미는 당뇨병 관리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이해하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잠도 없어지는데, 건강노화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수면을 유지하는 호르몬(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면서 잠이 없어진다. 이는 노화의 징표다. 그렇다고 해서 수면 부족이 노화의 절대적 요소는 아니다. 수면은 노화뿐 아니라 개인의 상황이나 주변 환경의 영향도 받는다. 수면 장애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노인이 많다. 예전에는 잘 잤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밤잠이 부족해 낮에 꾸벅꾸벅 졸 정도만 아니면 그 수면량이 자신에게 맞는 것이다. 내가 수면 전문가는 아니지만, 밤에 억지로 자려고 하지 말고 잠이 안 오면 일어나서 다른 일을 하면 된다. 그래서 느슨한 성격이 되라고 말한다. 너무 빡빡하고 예민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생각에 변화가 없어서 힘들어한다."
나이 듦도 자신의 새 모습으로 받아들여야
잠이 줄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스트레스라서 건강노화에 좋지 않을 것 같다. 노년의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흔히 동년배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혼자 살면 혼자라서, 가족이 많으면 많은 대로 걱정거리가 있다. 특히 노년이 되면 누구나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런 걱정을 하는 순간만큼은 치매가 아니라는 증거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진료실을 찾은 어르신에게 하루 뭐 하고 지내는지 물으면, 대부분 특별한 일이 없다는 답변을 많이 들을 수 있다. 대부분 TV를 보거나 자신의 늙음만 고민하며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다. 혼자 있으면 어떤 상황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자꾸 밖으로 나가서 다니는 것이 좋다. 어떤 고민거리가 생겨도 어떤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잊고 지낼 수 있다. 그런 것이 필요하다."
과거와 다른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리는 사람도 많다.
"모두 인생의 전성기를 경험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나이 든 현재는 못마땅한 것투성이다. 자기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이해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도 그런 모습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왕년에 대기업 사장이었든 뭐든 중요하지 않다. 내려놓을 것은 과감히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릴 때 봤던 할아버지나 할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런 모습이라고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나이 듦의 정의는 예전과 달라졌다. 나이 듦도 자신의 새로운 모습이다. 주민등록번호보다 생체 나이가 젊으면 된다. 건강노화는 신체적 기능이 필요하다. 현재 모습에서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헬스장에 가면, 80대 어르신이 러닝머신에서 천천히 그러나 큰 폭으로 걸으면서 영어책을 본다. 이처럼 남 눈치 보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본인이 건강을 잃으면 스스로는 물론 가족이 고생한다."
건강한 노인을 자주 만날 텐데, 건강하고 오래 사는 노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덜 꼼꼼하면서도 본인의 일상을 지키려는 성격이 공통점이다. 조금 힘들다고 오늘의 계획을 내일로 미루면 일상과 건강이 무너진다. 힘들어도 일상을 유지하면 그런 과정이 켜켜이 쌓여 건강노화를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일상이란 제때 밥 먹고, 계속 움직이고, 약 꼬박꼬박 먹는 것들이다. 또 그들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살다 보면 배우자와 사별하고 친구의 운명 소식을 접한다.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다니 하며 큰 상심에 빠지면 그때 건강이 무너진다. 건강한 노인일수록 당장은 마음이 무겁지만 금세 털털 덜어낸다. 큰 슬픔이지만 너무 깊게 빠지지 않고 단순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의사인 나도 본받는다."
의사에 의존하지 말고 고문처럼 활용해야
나이를 먹을수록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진다. 노년기의 현명한 병원 이용법은 무엇일까.
"기존 지병은 평소 다니는 병원의 의사와 상담해 조절하면 된다. 동네 의원은 기본적으로 노년내과와 같은 기능을 한다. 환자 대부분이 노년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 상담하니까 본인은 건강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의사가 본인의 건강을 책임질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 자체가 건강노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체적인 건강노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든 가족이든 누구라도 본인의 건강을 책임져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주체적으로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에게는 자문을 구하는 정도면 된다. 본인이 식습관과 운동을 이렇게 하고 있는데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은지 전문적인 분석을 받는 것이다. 또 병원·보건소·언론에서 얻은 건강 요령을 스스로 실천하려는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제때 예방접종을 하는 등 주체적인 건강노화 실천이 필요하다."
노인에게 꼭 필요한 예방접종은 무엇인가.
"독감 백신은 매년 9~10월에 한 번씩 맞는 것이 좋다. 폐렴 백신은 매년은 아니고 65세 이상에 한 번 맞으면 된다. 면역이 저하된 경우는 5년 후 추가 접종한다. 폐렴 백신은 두 가지(13가, 15가)가 있으니 의사와 상의해 선택하면 된다. 파상풍 백신과 대상포진 백신도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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